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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신동엽생가 - 시인 신동엽 생가, 부여여행을 마치며.


서동공원 궁남지를 떠나 터미널로 향하던 중
우연히 만나게 된 시인 신동엽 생가.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그 이름, 시인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로 시작하던 그 시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신동엽(1930~1969)은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 문단에 나와
<껍데기는 가라>, <금강>,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 민족문제와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명작을 발표하여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궁남지에서 터미널 방향으로 가다보면 계백장군 동상이 나온다.
정면을 보고 있는 동상을 기준으로 동상 왼쪽으로 가다보면 신동엽 생가가 나오고, 조금 더 가다보면 부여시외버스터미널이 나온다.














터미널로 향하던 중 우연히 만나게된 시인 신동엽 생가 이정표.
골목길로 70m 들어가면 되겠군.
아직 버스시간도 조금 남았겠다...잠시 들렀다 가기로 한다.













골목길에 들어섰다.
주변에서 흔히 보던 골목길.
햇살에 눈이 부시다.













파아란 지붕의 기와집.
무심코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 그런...
한때 남의 소유가 되었던 것을 미망인 인병선 시인이 되사서 옛날의 모습을 찾아 놓았다고 한다.
복원 당시 신동엽 시인이 살던 때 그대로 초가였으나 이제는 기와로 바뀌었다.












대문에 붙여진 명판만이
이곳이 시인 신동엽 생가라는 것을 알려준다.
대문은 굳겨 잠겨 있다.













공사중인건지 보존을 위한 건지
지금은 출입할 수 없다.
이 집은 신동엽 시인이 소년기부터 청년기를 보낸 곳으로 1985년 유족과 문인들에 의해 복원되었고
2003년 부여군에 기증되었다고 한다.














까치발을 들고 담장 안을 들여다 본다.
안채와 바깥채가 보인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집 주변으로는 공사가 한창이다.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 홀로 덩그러니 남겠구나...
왠지 조금 쓸쓸해 보인다.








신동엽(1930~1969)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다시 터미널로 발검음을 옮긴다.
하아얀 백구 한마리가 미친듯이 나를 반겨준다.
나도 반가워
사진한장 찍고 자리를 뜨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나와 나를 이상한듯 쳐다보신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지나쳐 본다.










터미널엔 서울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5시 40분 출발이다. 현재시각 5시 35분.

부여터미널에서 서울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16:10 /  16:50 / 17:40 / 18:30 / 19:20 이렇게 있다.
버스시간에 맞춰 일정을 잡으면 좋다.










당일치기 부여여행 이동경로.

아침 7시50분차로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여 10시쯤 부여에 도착
오후 5시 40분 서울행 버스에 오름.

시외버스터미널 --> 부소산성 --> 구드래공원 --> 정림사지 --> 궁남지(서동공원) --> 신동엽생가 --> 시외버스터미널

전일정 도보 이동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오른다.




2010.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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